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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달째 금주중인 전 알콜중독자의 소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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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또만사랑해
댓글 0건 조회 443회 작성일 24-09-08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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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살 남자입니다.

2018년의 첫날 약 15년간 피우던 담배를 끊기로 결심한 뒤에 지금까지 한가치의 담배도 안피웠습니다.

하지만 그날 부터 제 음주 습관이 시작되었던것 같네요.

 

사실 저는 체질적으로 알콜분해 효소가 별로 없습니다.

태어나서 처음 술을 마셔본게 중3인가 고1이었는데 그때부터 저는 술 마시면 안되는 사람인걸 알게 되었죠.

소주 한두잔만 마셔도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고 반병을 넘으면 온몸이 빨개지고 한병을 넘으면 먹은걸 다 토해냅니다.

그러고는 다리가 저리다거나 두통이 심하다거나.. 어쨋든 전형적인 알쓰였죠.

 

그런데 삼십대를 넘어서면서 전과 다르게 술을 마셔도 전처럼 얼굴이 빨개지지도 토하지도 않게 되었습니다. 그때는 그저 '알콜에 내성이 생겼나 체질이 바꼈나' 싶었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나이가 들면서 오히려 몸이 약해지고 혈액순환, 신진대사가 느려져서 알콜을 방어하는 능력이 떨어져 술을 마셔도 겉으로 티만 안났지 몸은 점점 썩어들어가고 있었던것 같습니다.

 

어쨋든 담배를 끊었다는 명분으로 그 중독을 술로 치환해서 버텼나봅니다.

그렇게 2018년 첫날부터 2024년 8월 7일까지 6년 7개월동안 하루도 빠짐 없이 술을 마셨습니다. 심지어는 건강검진 전날도 맥주 세네캔은 먹었던것 같네요.. 

보통 사람들과 만나면 기본 2차까지 가는데 적으면 2병 많으면 3병에 막차는 맥주를 마시는 식이었습니다.

주말에는 그냥 고삐풀고 몇 병 마셨는지도 모르고, 거의 첫차 타고 들어가거나 택시타고 들어가는 일상이었죠.

혼자서는 보통 참이슬 빨간거 플라스틱 1병, 맥주 500 한캔 사서 소맥으로 스타트해서 다 마시고 잠들곤 했습니다..

술깨고 잠깨면 맥주나 위스키 스트레이트 한두잔 더 마시고요.

주량만 놓고 보면 심각한 수준은 아니었는데 몇년동안 하루도 빠지지 않고 술을 마셨다는게 큰 문제였던 것 같습니다.

 

어릴땐 알쓰라 술도 못 먹던 놈이 이렇게 매일 술을 마셔대니 주변에서도 신기함반 걱정반이었습니다.

당연히 친구들은 신기해했고, 가족들은 걱정했죠.

근데 몇년간은 제 자신도 놀랄정도로 술이 잘 받더군요.

솔직히 아무리 마셔도 취하기만 할뿐 다음날 숙취가 전혀 없었습니다. 예전처럼 토하지도 않았고요. 

단지 알딸딸하고 기분좋은 취기만 밤새도록 지속되고 기억을 잃지도 머리가 아프지도 않으니 술 만한 친구가 없더라고요.

그렇게 몇년동안 평일에도 달리고 주말에도 달리는 생활을 반복했습니다.

 

그런데 딱 작년부터 신호가 오더라고요. 같이 마신 친구들이 다음날 해장이니 뭐니 머리가 아프니 어쩌니 할때 이해를 못했는데.. 언젠가부터 술마신 다음날 미칠듯한 두통과 함께 숙취가 찾아오는 겁니다.

나름 건강한 체질이었던지라 평소에 아플일이 없었으니 그 고통이 더 크게 느껴졌는지도 모릅니다.

머리를 드릴로 후벼파는것 처럼 아픈 두통이 점심까지 이어지는 날도 있었습니다.

근데 그 후로 더 무서운게 찾아오더군요. 

블랙아웃이었습니다. 

언젠가부터 술 마시고 일어나보면 옷도 안 벗고 침대에 누워있거나, 버스정류장에서 아침을 맞거나.. 정신을 차려보니 혼자서 어딘가를 걷고 있다거나...

다음날 친구들이 보여주는 동영상에서 제가 미친듯이 쌍욕을 하며 쉐도우 복싱을 하고 있다던가..... 지갑이나 폰을 잃어버린적도 몇번 되고요..

그래도 보통 네병 넘지 않으면 블랙아웃 까지는 안가길래 이제 좀 줄이면 되겠지 했는데.. 

시간이 좀 지나니 두병만 마셔도 블랙아웃이 되기도 하고.. 도저히 종잡을 수가 없더군요.

 

그 이후로는 주로 혼술을 했습니다. 사람들과 마셔도 1차 정도만 하고 '모자르면 차라리 집에가서 혼자 더 마시지 뭐~' 하면서 집에 술을 사가는 날이 늘더니.. 결국은 혼술이 습관이 되더군요.

 

저는 사람을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제가 좋아하는건 결국 술 뿐이었습니다.

 

혼자 술을 마셔보니 앞 사람 기분 맞춰줄 필요도, 가끔 술 취해서 하는 ㅈ같은 소리도 들어줄 필요가 없으니.. 더 좋더라고요.

그래서 유튜브 틀어놓고 먹고픈 안주와 그에 맞는 주종 페어링 해서 적당히 얼큰해지면 낄낄대고 깔깔대다 잠드는게 하루의 낙이고 해방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매일매일 설사를 하고 있는 저를 깨닳게 되었습니다.

예전에는 무리해서 마신 다음날 아침에 한번 또는 점심까지 두번 정도만 술똥을 싸면 그 이후로는 속이 편해졌는데.. 

마지막으로 싼 황금똥이 언제인지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매일 설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이게 참 환장할 노릇인게.. 아침에 집에서 나가려고만 하면 갑자기 신호가 오고.. 시도 때도 없이 물똥이 나오고 뭐만 조금이라도 먹거나 마시면 바로 설사가 나오는겁니다.

물론 그건 제가 매일매일 술을 마셔서 그런거였죠.

 

이제 덜컥 겁이나기 시작했습니다.

'아.. 내 몸이 맛이 갔구나. 이거 잘못하면 요절하겠다' 하는 생각이 번쩍 들었습니다.

그렇게 충격을 받고 '술을 끊자 제발 끊자' 해도 그날 저녁이면 또 한잔이 생각나더군요.

 

'내가 술 없이 살 수 있을까 적당히 마시면 이만한 친구가 있을까' 따위의 생각을 하며 스스로를 무너트렸습니다.

 

그리고 다시 몸이 망가지도록 술을 마셨습니다.

 

결국 저라는 인간에게는 '적당히 조절' 하는 능력 따위는 없다는걸 스스로 깨닳고 1 또는 0 으로 밖에 작동할 수 없는 한심하고 나약한 존재라는걸 인정했습니다.

 

'모든 나쁜 중독에서 벗어나자! 그래서 주식도 끊지 않았느냐'

 

'매매중독도 참고 있는데.. 술도 참아보자. 하루라도 덜 마시면 죽기전에 술 마시는 날이 하루라도 줄어드는거 아니냐'

 

이렇게 마음을 먹고 술을 참은지 한달째 입니다.

 

처음 열흘은 너무 고통스러웠습니다.

술을 마시지 않았는데도 마치 과음한것처럼 심한 두통이 몇날 며칠 이어지더군요..

설사도 일주일 정도 이어졌습니다.

그렇게 며칠간의 금단 증상을 이겨내고 한달이 지난 오늘,

 

살이 5키로가 빠졌습니다.

아침에 일어날때 예전보다 덜 힘드네요.

입과 턱 주변에 만성적인 여드름이 사라졌습니다.

의식이 또렷해졌고 말을 할때 단어가 가물가물하던 증상이 사라졌습니다.

결정적으로 더 이상 설사를 하지 않습니다.

 

한달전에 처음 금주를 결심한 날 '한달 뒤에 자축주를 마시자' 했지만 오늘도 저는 치킨에 제로콜라를 한잔 마셨습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아직도 술이 많이 생각납니다.

고작 한달 참았으니 당연하겠죠..

 

그 알딸딸하고 몽롱한 기분, 걱정도 근심도 그 순간 만큼은 잊고 화면속에 드립을 날리는 탁재훈을 보며 낄낄 깔깔 하고 그냥 잠들던 날이 그립기도 합니다.

 

근데 그건 스스로 조절 할 수 있는 특별한 분들만이 영위할 수 있는 행복이겠죠.

 

저처럼 절제 하지 못하고 제 몸을 망치는 타입의 인간에게는 신의 물방울이 허락되지 않나 봅니다.

 

흔히 술, 담배 끊은 사람을 '독하다 대단하다' 하는데..

 

진짜 대단한 사람은 술을 끊은 사람이 아니라 술을 조절해서 마실 수 있는 사람이라고 봅니다.

 

오늘밤도 한잔 생각이 간절하지만 제가 좋아했던 술 이야기를 안주 삼아 제로 콜라로 갈증을 날리며 한자 적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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