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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당직서고 정신이 혼미한 소위 필수과 의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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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주황색
댓글 0건 조회 492회 작성일 24-03-26 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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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때 주당 120시간씩 일했는데 10여년 지나서 다시 하려니 환자 치료하다 저도 죽겠네요.

 


 


제가 뭐 의료의 큰 그림을 볼 수 있는 건 아니고, 소위 종합병원 필수과 의사 입장, 그리고 의료를 아는 한명의 대한민국 국민 입장에서 몇자 적어봅니다.  정신이 혼미해서 글에 두서가 없고 난잡한 점 죄송합니다. 


 


 


일단 목적에 따라서, 그리고 부작용을 감당하는것에 국민적 합의가 있다면 의사 숫자 늘려도 됩니다. 


 


이를테면, '의사 기대수익을 낮춰서 고등학교 최상위권 성적 학생들이 이공계를 조금이라도 더 가도록 하는것'이 핵심 목표라면 의대 늘리는 것이 폭력적 방법이지만 앞뒤는 맞습니다.


 


지금도 저것도 의대 증원의 목표로 말하긴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나라 망하지 않으려면 최상위권이 이공계를 가도록 하는게 필요하다고 생각하는데,


 


당연히 최선의 방법은 <이공계의 졸업 후 대우를 개선하여> 이공계를 가도록 하는 것이지만, 이게 뭐 전혀 가능하지 않겠다 하면 의대를 망가뜨리거나 의사 기대수익을 월 500정도로 낮춰서 이공계를 가게 할 수도 있겠죠.


 


다음으로 지역의 1차 진료를 약간 늘린다.. 굉장히 비효율적이지만 최소 10년 이상 지난 후에는 가능성은 있겠습니다. 물론 밀리고 밀려서 인구 없는 지역에서 1차 진료를 한다면, 최대 만성질환, 감기, 물리치료정도 가능할 것이고, 이에 대해서는 지금도 접근성이 낮진 않지만, 어쨌든 어쩌면 조금 더 편리하게 진료받을 수 있을 수도 있겠습니다. 


 


그렇지만 지금 의대 정원 늘리면서 이걸 필수과 살리는 수단이라고 하는건 많이들 지적하시듯 도대체 앞뒤가 안맞는 소리입니다.


 


오히려 필수과부터 확실하게 망가뜨리는 정책인데, '의사 기대수익 낮추고 지역 1차의료 접근성을 티끌만큼 개선하기 위해 필수의료를 확실히 망가뜨린다'는 합의가 이루어진게 맞나요


 


왜 필수과부터 망가지냐


 


일단 제 연봉 대충 까보면


대학 6년 졸업하고,


인턴/레지던트 총 5년간 세전 연봉 3000-4000정도 받다가 (당시 대충 주 120시간은 일했네요. 36시간 근무/12시간 오프 스케줄이었으니), 군대 38개월 갖다와서 전임의로 2년간 세전 연봉 5000정도 받다가,


의사면허 따고 10년 지나서야 비로소 세전연봉 1억 찍고 40대 현재 1억 2천정도 됩니다.


 


뭐 많을수도 있겠지만, 공대 간 고등학교 친구들 이야기해보면 생애 누적 수익이 아직 제가 더 많지는 않더군요 (서울대 연대 공대간 친구들 기준).


 


성적은 어땠냐 나름 의대 내에서 5% 안에 들었고 성적으로 뽑는 소위 인기과도 갈 수는 있었습니다. 


 


제가 무슨 돈 많이줘서 필수과 하는건 아니고, 그렇다고 의대 성적이 나빠서 하는것도 아니라는 이야기입니다. 이 분야가 하고싶어서 했어요


 


저희때도 이미 필수과는 돈 못번다는 이야기는 진작부터 있었지만 성적 좋은 친구들 일부는 꾸준히 소위 필수과에 갔어요. 최상위권 친구 도 심장 수술하고 싶다고 흉부외과 가고..


 


이런 경제적으로는 합리적이지 않은() 선택을 하는 이유는 1) 기대 급여가 절대적인 수준에서 나쁘지는 않음(즉 월급 상대적으로는 덜 많더라도 돈 부분은 포기하고 내가 원하는 일을 선택할 수 있음) 2) 환자 치료해서 살려놓는 소위 뽕맛 3) 왠지 진짜 의사인것같고 환자들이 존경해줄것같음 


 


등인것같은데,


 


이런게 총체적으로 깨져가는 중에 이번에 쐐기가 박혔습니다.


 


1) 기대 급여


의대 정원 늘리면 잘해야 미용이나 일반의 늘어나지 소위 인기과 늘어나는게 아닙니다. 소위 필수과 하다가 자리가 없어서 일반의로 개원해야 하는 시점에서의 경쟁자니까, 필수과 기대급여만 선택적으로 낮아지는 결과죠. 


필수과 하다가 '일반의 개원이 돈이 더 되어서' 피부미용 일반의로 가는거 아니냐 아니 그럴거면 처음부터 일반의를 하지 뭣하러 필수과를 하나요.. 


필수과 하다가 일반의로 개원하는건 통상 일할 자리가 없어서입니다.


의사가 부족한게 아니라 일자리가 없어요.


정확히는 가장 전문적인 의료를 펼칠 자리가 없습니다. 수도권에만 없는 게 아니라 지방에도 없습니다.


왜 자리가 없냐 안뽑으니까.. 왜 안뽑냐 하면 그 분야 환자를 받으면 적자가 나니까 병원에서 자리를 안 만듭니다. 


국립병원 지어서 '당연히 적자를 보면서' 필수/중증의료 담당하도록 하면 해결되겠지만, 지금 국립의료원, 국립암센터, 건강보험공단 일산병원, 국립 대학병원 할 것 없이 '수익을 내서 병원을 운영하도록'하고 있습니다. 민간 대학병원은 당연하고요.  


의사 많이 만들어도 필수과 자리는 안늘어나고, 필수과 했다가 전문 분야로 자리 못잡으면 일반의랑 경쟁해야 하는데, 일반의는 두배로 늘린다고 하니 (즉 안전장치도 없음) 까딱하다 실업자 될 각오 아니면 전에 멀쩡히 필수과 가던 사람들도 필수과를 선택할 수 없다는 겁니다. 적어도 앞으로 10년간은요. 


영상의학과 등등 가려고 존버를 하든지, 미국 의사로 가려고 노력해 보든지, '필수의료만 빼고'다른 길을 찾아보겠죠


아 그리고 지금 네 월급은 어떻게 나오는데 하시면, 


사실 뭐 제가 일한걸로는 제 월급 안나오고 적자입니다. 다른 부대시설 수익이나 다른 좀더 수익이 나는 과에서의 벌이를 나눠다가 소위 필수과 월급 채워주는거죠. 제 월급 반으로 줄이고 두명 뽑으면 병원 손해나는 치료가 많아지면 적자가 더 심해질 수 있겠죠ㅎ


 


2) 환자 치료해서 살려놓는 소위 뽕맛


전에는 좀 죽어가는 사람 살려놓으면 감사를 표하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뭐 이게 꼭 맞다는건 아니고요. 사실 의사도 돈받고 하는 서비스업이니까 뭐 서비스 받고 감사할 필요 없죠. 저는 식당에서 밥 잘 먹고 나올때 택시에서 내릴때 감사합니다 인사하지만요.


(무슨 촌지같은거 말하는 거 아니고 말로 하는 감사 이야기하는겁니다. 저는 김영란법 전에도 환자분이 직접 농사지은 농산물 보내주신거 받아서 간호사선생님들 나눠먹은거 말고는 다 돌려보냈고 금전문제에 떳떳합니다. )


아무튼 이제는 연세 드신 분들 아니고서는 말로도 고맙다 하시는 경우 많지 않습니다. 


문제는, 요즘은 뭔가 '성공적으로 치료하는것'이 기본값이고 돌아가시거나 완치 안되면 눈에 불을 켜고 의사 잘못한게 없나 찾으려는 분들이 늘어난다는 겁니다.


환자 치료하면서 무슨수로 최선의 결과를 항상 얻나요 


다행히 저는 아직까지 무슨 소송을 당하거나 한 적은 없지만 많이들 이런 소송위험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민사에 심지어 형사 문제도 있죠


산부인과쪽은 특히나 의사 잘못이 없어도 배상하도록 되어 있다는데(다른과라 정확히 잘 모름)


무슨 정해진 명백한 중과실이나 고의적인 범죄 아니고서야 확률적으로 발생하는 불가피한 나쁜 결과들은 형사처벌에서 자유로운 상태에서, 금액적으로는 국가나 보험에서 배상해야 하겠죠. 보험 비용은 수가에 반영해 놓든지 나라에서 들어주든지.. (이번 필수의료패키지에 나온 내용은 비슷한거같지만 세부는 생판 다른이야기입니다) 선례도 있죠. 예방접종 부작용은 나라에서 배상해주니까.


그래서 지금 필수과 지원하는 20대 친구들 보기에는, 환자 치료한다는 뽕맛은 본적도 들은적도 없고, 대신 난 딱히 잘못한 거 없는 것 같은데 치료 결과 나쁘다고 구속되고 십년치 번거 물어주고 해야하는 게 지금의 필수의료입니다.


의대 증원과는 직접적인 상관은 없지만, 의대 증원 이후의 신문기사나 각종 온라인 댓글 등에서 위의 문제들을 더 확실히 느끼고들 있는 듯 합니다.


 


 


3) 왠지 진짜 의사인것같고 환자들이 존경해줄것같음 


일부 제 환자들은 저를 과하게 존경해 주시는 것도 같고, 사실 뭐 의대 늘리든 안늘리든 분야에서 열심히 하고 있으면 적어도 내 환자들은 꽤 알아주시긴 합니다


그렇지만 새로 들어오는 친구들 입장에서는 그런 경험이 없죠.


온라인으로만 봐서는 필수과고 뭐고 의사들은 다 죽일놈들인데 딱히 필수의료라고 더 나아보이지 않겠죠. 


 


아무튼..


 


이번 의대 증원은 '지금 이 시스템이 문제가 있는게 명백하니, 열심히 환자 살리다보면 제대로 된 정부에서 언젠가 시스템을 개선해주겠지'라고 생각해오며 필수의료 선택해 오던 친구들에게, 시스템의 문제도 잘 모르고 해결할 생각도 없다는 것을 확실하게 알려준 사건입니다. 


 


이번 의대증원 저는 취소되지 않을 거라고 처음부터 봤는데,


 


취소되건 취소되지 않건 필수의료는 10년간의 공백이 생겼습니다. 필수의료 전공의들은 이번에 사직을 한 것이고, 무슨 합의가 되든 안되든 거의 돌아오지 않을겁니다. 새롭게 6년간도 필수의료를 할 졸업생들은 잘 없겠죠. 


 


10년 후 어쩌면 낙수효과를 부르짖는 분들 말씀처럼 밀리고 밀려서 필수의료하는 사람이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제 전문영역을 생각할 때, '밀리고 밀려서, 다른 과를 다 떨어진' 소위 낙수의사()가 저나 제 동료들 만큼 저희 일을 전문적으로 잘 해낼 것 같지는 않습니다. 오만하게 들릴수도 있겠지만, 고난이도 분야 기준에서 하는 말입니다.  고등학교 성적이 좀 더 낮은 것(이건 ok)이랑 의대 공부 다 마치고 난 후 분야 내에서 뒤떨어지는 경우(문제가 있음)는 다른 상황입니다. 


 


나가는거 정당하냐 제가 다른 영역은 모르겠고, 저희과 전공의 선생님들은 파업이 아니고 최종적으로 때려친게 맞습니다. 필수의료는 못하겠다고 일을 포기하겠다는데 뭐 어쩌겠나요. 피부미용이 더 좋아서 관두겠다는게 아니라 그냥 절대적인 수준에서 소위 필수의료는 못하겠다는데..  


 


일단 저는 제자리에 있는데 얼마나 몸이 버틸지는 모르겠네요 가족들도 견디기 힘들고.. 수년내에 개선은커녕 원래 수준으로라도 저희 분야가 회복될 가능성이 없다는 게 더 큰 문제입니다. 


 


나중에 내가 더 나이들어 아프면 대체 누구한테 수술받나도 걱정이네요


 


앞으로 여론 바뀔 일도 없겠지만 여론이 어떻게 되든 정책이 좀 바뀌든 말든 이미 몇년간 망한 흐름은 돌이킬 수 없어보입니다.


 


아 뭐 필수의료에 갑자기 정부가 돈 쏟아부으면 회복될 수는 있겠지만,


 


그럴 돈도 없을거고, 애초에 그렇게 할거면 지금 부어야 할 돈 1/10정도만 진작에 필수의료에 선별적으로 투자했어도 똑같은 개선효과 있었을겁니다. 그래서 필수의료 제대로 된 일자리들이 충분히 생겼는데도 그때 "갈 사람이 없어서" 문제인 거면 그 다음에 의대를 늘리든지 뭐 미용을 개방하든지.. 


 


제가 지금와서 이 분야 선택한 걸 딱히 후회하거나 하지는 않습니다만, 의료 분야가 갑자기 이렇게 망가지는건 너무나 안타깝습니다. 


 


아마 대댓글은 거의 못달지 않을까 싶네요


 


누차 쓰지만 이제와서 뭐 더 바뀔것도 없어서


 


똑똑한 분들과 제대로 된 정치인들이 제가 모르는 뭔가 놀랍고 훌륭한 방법으로, 예견된 파국을 잘 해결해 주기를 바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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