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전쟁)은 6.23전쟁이며 사실은 남측의 선제공..16편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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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편 시리즈 ◇ 격전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1950년 6월 28일 서울해방작전을 완료한 조선인민군은 한강도하와 남진공격을 하지 않고 서울에 머물렀다. 당시 북조선은 조선인민군이 서울을 점령하고 이승만과 한국군 고위지휘관들을 체포하면 북의 최고인민회의와 남의 국회가 통합된 전민족통일의회가 구성되고 통일정부를 수립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서울을 완전히 포위하여 퇴로를 차단하지 못했기 때문에 이승만과 한국군 고위지휘관들은 한강을 건너 남쪽으로 달아났다. 그래서 조선인민군 총사령부는 서울해방작전계획과 다르게 전개된 상황에 맞춰 작전계획을 세워야 했다. 그것은 서울해방작전 이후에 전개할 작전계획이었다. 조선인민군 전투부대들이 서울을 점령하고 3일 동안 한강도하와 남진공격을 하지 않은 까닭은, 조선인민군 총사령부가 서울해방작전 이후에 전개할 작전계획을 세우고 있었기 때문이다. 조선인민군 총사령부가 서울해방작전 이후에 전개할 작전계획을 작성하고 있었던 1950년 6월 27일 오후 8시 미국 대통령 트루먼은 백악관에서 국가안보회의 비상회의를 소집했다. 트루먼의 주재로 진행된 비상회의에서 한반도 내전에 무력개입을 감행하기로 결정했고, ‘코리아상황(Korean Situation)’이라는 제목의 정책문서가 작성되었다. 트루먼은 그 문서에서 미국 원동군사령부 관하 해군력과 공군력을 무제한으로 한반도에 동원하면서, 한국군에게 전폭적인 군사지원을 제공할 것이며, 미국 공군은 38도선 이남 지상에 있는 북조선군의 무기와 병력, 다른 군사목표들을 타격하고, 미국 해군은 38도선 이남 해상에서 전투력을 무제한으로 사용할 것을 명령했다. 다른 한편, 트루먼은 미국 해군 제7함대에게 대만섬에 대한 중국인민해방군의 공격을 저지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그 명령이 하달되자마자 일본에 주둔한 제7함대는 군함 10여 척을 대만해협에 급파하여 중국인민해방군의 대만상륙을 원천봉쇄했다. 1950년 6월 28일 마오쩌둥 주석은 중앙인민정부위원회 제8차 회의에서 “올해 1월 5일 트루먼이 미국은 대만문제에 간섭하지 않겠다고 성명을 발표했지만, 지금은 트루먼 스스로 자신의 성명이 거짓임을 증명했고, 중국의 내정에 간섭하지 않겠다는 미국의 국제협의를 깨버렸다”고 비난했으며, 저우언라이 외교부장(당시 직책)은 “트루먼이 27일에 발표한 성명과 미국 해군의 행동은 중국 영토를 무력으로 침략한 것이며 유엔헌장을 철저히 파괴한 것”이라고 비난하면서, “미제국주의자들이 그 어떤 방해책동을 벌이더라도 대만이 중국에 속한다는 사실은 영원히 변하지 않을 것이다. 중국의 전체 인민은 한마음 한뜻으로 침략자 미제의 수중에서 대만을 해방하기 위해 끝까지 분투할 것”이라는 대미성명을 발표했다. 조선인민군 총사령부가 서울해방작전 이후에 전개할 작전계획은 무엇이었을까 조선인민군 총사령부가 작성한 ‘공격작전의 정보계획’이라는 제목의 문서와 평양 주재 소련군사고문단 단장 울라지미르 라주바예브(Vladimir Razuvaev)가 소련군 총참모부에 보고한 ‘6.25전쟁 보고서’라는 제목의 문서에는 조선인민군 총사령부가 작성한 3단계 작전계획이 들어있다고 한다. 그 두 가지 문서에 담긴 3단계 작전계획 중에서 제1단계 작전계획은 조선인민군이 금천-구화리, 연천-철원, 화천-양구에서 공격을 개시하여 2일 안에 서울 부근의 한국군 주력부대를 포위, 섬멸하고 서울을 해방하고, 수원-원주-삼척을 연결하는 제1공격축선까지 약 90km를 5일 만에 진격하는 것이었다. 조선인민군이 수원-원주-삼척을 연결하는 제1공격축선까지 진격하면, 서울 외곽을 동서남북 방향에서 완전히 포위하고, 한국군의 퇴로를 차단하게 된다. 제2단계 작전계획은 군산-대구-포항을 연결하는 제2공격축선까지 약 180km를 14일 만에 진격하는 것이었고, 제3단계 작전계획은 부산-여수-목포를 연결하는 제3공격축선까지 약 80km를 10일 만에 진격하는 것이었다. 이런 사실만 보면, 조선인민군 총참모부가 제주도를 제외한 38도선 이남전역을 3단계에 걸쳐 29일 만에 ‘해방’하는 전면전 작전계획을 수립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조선인민군 총사령부는 38도선 이남전역을 ‘해방’하는 전면전 작전계획을 수립한 것이 아니라, 서울을 ‘해방’하는 국지전 작전계획만 수립했다. 그렇게 판단하는 까닭은, 전투부대를 어떻게 편성하고 운용할 것인지에 관한 구체적인 내용이 제1단계 작전계획에만 들어있고, 제2단계 작전계획과 제3단계 작전계획에는 들어있지 않기 때문이다. 제1단계 작전계획은 명실공히 작전계획이지만, 제2단계 작전계획과 제3단계 작전계획은 작전계획이라는 제목만 붙어있을 뿐 구체적인 내용이 없다. 작전계획이 없으면 전투를 할 수 없다. 이런 사정은 조선인민군 총참모부가 38도선에서 남해안에 이르는 350km의 작전종심 중에서 90km 계선까지만 진격하여 당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수도였던 서울을 점령하고 이승만의 항복을 받아내 통일국가를 건설하는 서울해방작전만 준비했음을 말해준다. <사진 >
▲ <사진 > 이 사진은 1950년 6월 28일 한국군이 구축한 서울방어선을 격파한 조선인민군 전투부대가 T-34 땅크를 앞세우고 서울해방작전을 전개하는 장면이다. 당시 조선인민군 총참모부는 금천-구화리, 연천-철원, 화천-양구에서 공격을 개시하여 2일 안에 서울 부근의 한국군 주력부대를 포위, 섬멸하고 서울을 해방하며, 수원-원주-삼척을 연결하는 제1공격축선까지 약 90km를 5일 만에 진격하는 서울해방작전을 전개했다. 조선인민군 전투부대가 수원-원주-삼척을 연결하는 제1공격축선까지 진격하면, 서울 외곽을 동서남북 방향에서 완전히 포위하고, 한국군의 퇴로를 차단하게 된다. 그러나 조선인민군 전투부대들은 서울을 점령하고 서울 남쪽 한강 계선까지 진격했지만, 서울 외곽을 동서남북 방향에서 포위하여 한국군의 퇴로를 차단하는 작전목표는 완수하지 못했다.
하지만 조선인민군 전투부대들은 제1단계 작전계획을 완수하지 못했다. 그들은 서울을 점령하고 서울 남쪽 한강 계선까지 진격했지만, 서울 외곽을 동서남북 방향에서 포위하고 한국군의 퇴로를 차단하기 위한, 수원-원주-삼척을 연결하는 제1공격축선까지 진격하지는 못한 것이다. 조선인민군 전투부대들이 제1공격축선까지 진격하지 못하고 한강 계선에서 한국군과 대치하고 있었던 1950년 6월 29일 주일미공군기지에서 이륙한 미국 공군 B-29 폭격비행대가 한반도 영공을 침입하여 평양에 대한 첫 공습을 감행했다. 북조선 전쟁지휘부는 미국이 한반도 내전에 무력개입을 감행하는 수준을 넘어 38도선 이북에 대한 무력침공을 감행하기 시작했음을 직감했다. 그런 급박한 상황에서 북조선 전쟁지휘부의 전략적 선택은 한 가지밖에 없었다. 전략적 선택은 한강을 건너 남진공격을 재개하여 38도선 이남전역을 ‘해방’하는 전면전이었다. 실제로 조선인민군은 1950년 6월 30일 한강을 건너 남진공격을 재개했다. 이런 역사적 사실을 보면, 1950년 6월 29일 미국의 평양공습은 국지전을 전면전으로 확대시키고, 한반도 내전을 국제전으로 전환시킨 결정적인 요인으로 되었음을 알 수 있다. 미국이 평양을 공습했다는 소식을 들은 스탈린 서기장은 1950년 7월 1일 평양 주재 소련대사 슈티코프에게 긴급전문을 보냈다. 그는 긴급전문에서 슈티코프가 북조선의 작전계획에 관해 자신에게 아무런 보고도 하지 않았다고 지적하면서, 조선인민군이 진격을 하려는 것인지 아니면 진격을 일단 멈추기로 결정했는지 알고 싶다고 했다. 그러면서 스탈린 서기장은 “우리가 판단하기에는 (조선인민군이) 두말할 것 없이 계속 진격해야 한다. (남조선) 해방이 앞당겨질수록 (미국의) 개입기회는 그만큼 줄어든다”고 썼다. 그러나 1950년 6월 현재, 일본을 점령한 미국 원동군은 압도적인 무력을 가지고 있었고, 백악관에서는 한반도 전쟁계획이 준비되었다. 당시 미국 원동군사령부 관하에는 정규군 14,300명과 주방위군 6,000명이 있었고, 폭격기, 전투기, 정찰기, 수송기를 비롯한 작전기 1,040대가 있었고, 항공모함, 중순양함, 구축함, 잠수함을 비롯한 군함 26척과 해군항공기 140대가 있었다. 그에 비해, 조선인민군 총참모부 관하에는 정규군 175,000명, 프로펠러식 전투기를 비롯한 소형 작전기 239대, 그리고 어뢰정과 경비정을 비롯한 소형 함선 16척이 있었다. 프로펠러식 소형 전투기밖에 갖지 못한 조선과 제트엔진식 전략핵폭격기를 보유한 미국의 격전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소형 어뢰정 6척밖에 갖지 못한 조선과 항공모함, 중순양함, 구축함을 보유한 미국의 격전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재래식 무기밖에 갖지 못한 조선과 핵폭탄을 보유한 미국의 격전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17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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