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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차 초등학교 남교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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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핑크장이
댓글 0건 조회 717회 작성일 23-05-31 0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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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네요, 


최근 몇 페이지에 '초등교사입니다.'라는 제목의 글이 단일 직종 중 가장 많이 눈에 띄는 것 같아요. 



제가 교사라서 유독 그런지도 모르겠습니다. 



바로 앞 '미국처럼 방학 때 무급하자'라는 글에 달린 댓글들을 읽고 하고싶은 얘기가 생겨 끄적여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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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인식



제가 이 글을 쓴 가장 큰 이유는 교사에 대한 인식 때문입니다. 







8:30에 출근해서 애들과 놀아주다 애들 하교하는 시간인 14~15시 되면 업무종료.



남는 1~2시간 동안 동료교사들과 티타임하다 16:30에 퇴근.



+ 연중 방학 3달. 게임 끝.







교사에 대한 이런 인식이 너무 서럽습니다. 



저도 사실 교대올 때 저런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서성한 공대 다니다 입대, 전역 후 때려치고 수능 다시 쳐서 교대 선택했습니다. 


아래에 현실 나열해보겠습니다. 


 



2. 업무


어떤 조직이든 그 조직이 제대로 돌아가려면 그에 수반되는 인력들이 필요하기 마련이겠죠. 


 


그런데 학교의 문제는, 그 인력들을 교사가 모두 담당하는 데 있습니다. 


저는 6학급 학교(학년 당 반이 하나씩밖에 없는 소규모 학교)에서 근무하는데, 큰 학교나 이런 학교나 마찬가지인 것도 있습니다. 


학년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 9시에 수업 시작해서 애들이 집에 가고 나면 오후 2~3시 쯤 됩니다. 


은행원들 보면 은행 샷다 내려가는 오후 3~4시부터 업무 시작이라고 하는데 저희도 같은 느낌입니다. 


애들 하교하고 난 다음부터 업무 시작입니다.  


 


젊은 남자 특성 상 정보업무를 오래 담당했습니다. 뽐뻐답게 드래곤볼로 제가 쓸 PC정도는 직접 조립하는 수준은 돼서, 하다보니 그냥 교내 전 PC의 노예로 일 년을 보내던 중, 교육청으로부터 '통합배선단자함 뜯어서 랜케이블 종류 확인하고 양식에 맞게 작성한 다음, 교내 전체에 깔린 랜선을 층별로 별관까지 지도로 그려서 제출하라'는 공문을 접수하게 되었습니다. 기가 찬 일이지요... 이거 교사가 하는 일 맞아요 적어도 교대에서는 이런 것들을 배우지 않았습니다. 


 


윗 글에서 누가 그러시더군요. 


 



'군인도 경찰도.. 모든 공무원이 공무 수행에 수반되는 행정업무를 하는데 유독 교사들만 행정 업무는 교사들 업무가 아니라고 말하는데... 교사는 공무원 아닌가요'






당신 아들딸 담임이 하라는 수업연구는 안하고 저딴 허드렛일 하느라 정작 본업인 수업에 소홀한다해도 용납이 가능한지요... 행정실에서 해야되지 않냐구요 학교 행정실에 인력이라고는 아줌마 실장, 아줌마 차석, 할아버지 시설주무관 계신데 이거 누가 하나요 정보담당 교사가 울며겨자먹기 식으로 초과근무달고 물어물어가며 합니다. 심지어 이렇게 업무연락 내리는 교육청 담당자는 전산직 공무원(전공자)들입니다. 그 사람들은 그 사람들대로 답답하고, 교사는 교사대로 답답할 노릇이지요... 이 외에도 '교사가 이런 일까지'라는 업무들이 학교 현장에서는 비일비재하게 일어납니다. 해결 방법은 간단합니다. 행정실 근무인력을 늘리면 됩니다. 그렇지만 결국 '돈(예산)'이 문제지요. 


 


저희 부친도 평생을 공직에서 보내셨습니다. 또 저는 의경 출신으로 동기들보다 학벌이 약간 낫다는 이유로 경찰서 경비교통계에서 현직 분들과 같이 일하면서 전역할 땐 '니가 최소한 직원 1.5인분은 했다'라는 감사한 칭찬까지 들었습니다. 많은 사회 경험을 해보진 못했지만, 제가 듣고 경험한 바로는 다른 공무원 조직 현장들도 다들 정신없고 바쁘게 돌아가기는 해도 최소한 '상식적'으로는 굴러갔습니다. 





3. 생활지도


다루기 힘든 애 하나둘(요즘엔 금쪽이 또는 VIP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그 뒤에 아니나다를까 떡하니 버티고 있는 VIP 학부모 썰들은 많은 분들이 다루었기 때문에 제가 겪은 일 하나만 얘기하고 넘어가겠습니다. 그리고 이 또한 이 길을 택한 저희 교사들의 숙명이니까요. 


 


어느 날, 4학년 남학생이 복도에서 6학년 여학생의 목에 이유없이 커터칼을 들이미는 엄청난 일이 있은 후, 하교 후 우울증약 복용 중인 가해 학생의 어머니께 사실을 알리고 후속 조치를 안내하고자 전화했더니 '선생님 보는 앞에서 우리 애 내가 죽여놓고 나도 따라 죽겠다'며 50분 동안 스피커폰으로 동반자살소동을 일으키는 수준의 피말리는 사건도 여러 차례 겪다보니 뭐 이제 굳은 살이 박혀 웬만한 일로는 눈 깜짝 안합니다. 일반 공무원들 악성민원인 얘기 많이 하시죠 저희는 이런 악성민원인의 전화 또는 학교 방문을 1년 동안 상시대기합니다. 위 학부모도 우울증 약 먹어가며 이틀에 한 번 꼴로 전화했습니다. 이유도 없습니다. 그냥 전화해서 '우리 애 잘못 키운 내가 책임지고 죽어야지' 같은 말만 되풀이합니다. 먼저 전화 끊을 수도 없습니다. 민원 응대 소홀로 지원청, 광역시교육청 가면 그냥 더 피곤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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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이 외에도 수많은 얘기들이 있지만 이미 지면을 넘은 것 같아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물론 여러 학교를 거치며 많은 선배교사들을 만나다보면 편하게만 일하려 하는 월급루팡들이 다른 직종보다 많게 느껴지는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이렇게 초과근무 57시간 풀로 채워가며 방학 반납해가며 쌔빠지게 허드렛일 하고 있는 교사들도 있다는 점을 알아주셨으면 하는 마음에 이 글을 씁니다. 


 


짧지 않은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결과적으로 뭐 징징대는 얘기였고, 아무쪼록 비판도 달게 받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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